지그문트 바우만

바우만이 2017년에 작고하고, 재작년 말에 그의 유작인 『레트로토피아』가 번역되면서 마케팅을 통해 바우만에 대한 관심이 환기된 적이 있었다. 한 선생님의 말씀처럼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회학자는 부르디외도 루만도 고프만도 하버마스도 아니고 ‘바우만’이다. 한동안 바우만에 골몰했던 적이 있는데, 제한적이겠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그에 관한 책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우선 바우만을 입문하는 데에 있어선 사진에 나온 책보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먼저 보시길 추천하는 편이다. 이 책은 복수의 저자가 바우만을 다루는 책으로 그의 생애와 전체적인 학문세계를 평이하고 다채로운 관심으로 풀어내는 책이다. 『사회학의 쓸모』의 경우에는 바우만의 입을 통해 그의 사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게 돕는 책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바우만의 중심이 되는 도서는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액체근대』, 『새로운 빈곤』 이렇게 세 권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아마도 바우만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있는 책일 것인데, 이 책에서 바우만은 다른 근대성 담론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홀로코스트 문제를 다룬다. 아마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며, 반유대주의의 물결 속에 영국으로 망명했던 그에게 이 주제는 각별했을 것이다. 바우만은 홀로코스트가 어떤 일탈이라기보다, 근대문명의 핵심인 이성과 합리성이 배태한 사건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이 문제를 국가폭력, 복종 등으로 풀어내는데, 이는 근대가 계몽의 변증법(아도르노), 문명화 과정(엘리아스), 탈주술화(베버)와는 다른 무엇임을 주장하는 책으로, 아이히만의 문제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는 기획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책은 『액체근대』이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초기 근대와는 달라진 후기 근대(late modern)를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혹은 유동하는 근대)로 명명하는 작업을 한다. 고체근대(solid modernity, 혹은 단단한 근대)와 다른 액체근대는 포스트모던 사회이론처럼 해체적이다. 견고한, 단단한 사회적 형식이 소멸하고, 민족국가(national state)의 기능과 권력이 약화되면서 국가기관의 기능들이 외주화(outsourcing)되고, 공동체는 액화되고 해체되어 네트워크화되며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삶은 프로젝트나 에피소드로 분할되어 결국 개인이 이 모든 불확실의 책임을 갖게 되는 사회가 유동하는 근대사회이다. 바우만의 liquid시리즈는 사랑, 공포, 삶 등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은 그 중심에 있다. 이 책은 현재 절판인데 ‘유동하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재번역된다고 알고 있다.

끝으로 중요한 책은 『새로운 빈곤』이라고 본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액체근대에서의 새로운 빈곤(new poor) 문제를 다루는데, 핵심은 크게 ‘노동윤리의 변화와 생산자 사회에서 소비자 사회로의 이행’, 다음으로는 ‘복지국가의 몰락과 사회의 배제’, 마지막으로 ‘새로운 빈곤층의 출현과 이들의 의미변화’이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핵심논의들이 자기복제로 보일 정도로 바우만의 저서에 반복되기 때문이고, 이 책에서 그것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몇몇 책은 이 책의 반복일 정도). 이 책은 현재 동녘출판사에서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한가?』로 재번역 출간되었고, 이 책은 따로 리뷰할 예정이다.

읽어보지 못한, 번역되지 않은 책들 중에는 『해석학과 사회과학』, 『실천으로서의 문화』 같은 책에 눈길이 가고, 읽게 되면 목록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바우만의 강점은 우리시대에 관한 하나의 유의미한 해석을 제시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포착하고, 그것이 이름을 붙이는, ‘개념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름 바우만을 소개하지만, 언제나 부족함은 바우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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