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주의, 안 좋은 소리주의

요사이 이른바 기독교 빌런 독서를 좀 했다. 그중에는 비교적 최근에 <복있는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낸시 피어시의 『네 몸을 사랑하라』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대강 사회변화, 그것도 성(性)문화 변화에 따른 보수 기독교의 대응이다. 저자 낸시 피어시는 한국에서 잠시 유행했던 기독교 세계관 맥락의 있는 사람으로 성서학을 전공했다고. 대체로 스스로를 꽤 상식적인, 수준 높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수준 높게 소개한다고 자위할 때 좋아하는 작가. 교회 밖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고, 그런.

그래서 이 책은 포르노그래피, 동거, 이혼, 동성애와 성전환, 낙태 등의 문제를 기독교 특유의 시각에서 보수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몸과 영혼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문제라 이런 안 좋은 사회현상(위에 열거한 프로노, 동거, 이혼 등)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원론적 세계관을 타파하기 위해 무려 끌고 오는 게 기독교 세계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고, 저자의 스승이기도 한 “프란시스 쉐퍼”.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을 포함해도 태반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 어쨌든 저자는 지속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주저리주저리 그럴싸한 척, 굉장히 뭔가 있고 고상한 척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책을 나중에 조용기 책처럼 한 번 제대로 읽고 ‘보수 기독교의 성 담론’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가볍게 말하자면 “저런 식으로 하니까 망하지” 정도로 정리된다. 저자 주장의 타당함은 그만 알아보기로 하자..

이런 말만 할 거면 도대체 글은 왜 쓰는 거냐. 단순하다. 그냥 기독교계가 구려서 써본다. 나야 기독교를 탈출한 지 꽤 됐지만, 그 바닥 돌아가는 생리는 대충 안다. 내가 흥미로운 건 이 책이 그래도 복음주의 계열에서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책이나, 진보적인(?) 책을 출간하는 <복있는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것. 책의 추천사를 보니 이찬수를 필두로 한 보수 기독교의 지원이 있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이찬수 목사 교회에서 이 책으로 행사도 했다.

복음주의 기독교계, 그중에서도 진보적 복음주의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동성애에 보수적인 사람을 비판하는 게 일상이다. 아마 이번에 대형교회 목사들이 차별금지법에 관해 개소리하는 기사 링크도 하나씩 공유해가며 페이스북으로 욕했을 텐데, 이 책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듯. 왜 그럴까? 공공연하게 서로들 아는 사이니까 그럴 거다.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빨아주다가 막상 이런 책 나오면 함구하는 그런 거. 그러니까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이 나와도 “너나들이하는 사이”니까, 서로는 비판을 안 한다. 아마 이런 책이 조금만 자기들 기준에 수준 낮다고 여겨지거나, 지들이랑 안 친하거나, 보수적인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까고 조롱하느라 정신없었을 거다. 참 판 자체가 더러운 판이다. 이 책의 운명이나 그들의 운명이나 비슷할 것.

이 정도로 중립을 유지하지 못한 글이 거의 없었는데, 글이 질 나빠서 이 글을 읽으신, 내용에서 비판하는 책 또는 일군의 무리와는 아무 상관 없으실 일반 독자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기독교판이 너무 구려서, 주체를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