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독교 서적을 보는 이유

사진은 예전에 처분한 기독교 관련 서적들, 책장 한 면을 차지할 정도로 책이 많았고, 사실 지금도 많다. 내가 산 것도 많았지만, 무교회주의자 교수님께서 주신 신학 및 성서 주석도 아직 상당하다. 몇백 권은 처분했는데, 아직도 몇백 권이 남았다. 한때 신학 덕질을 꽤 과하게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평생 공부 안 했을 영역이다. 교양으로서든, 지식으로서든 기독교를 공부하는 것은 굉장히 큰 도움이다. 서구 정신의 한 원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통 기독교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고, 기독교인도 아니지만, 기독교와 연관이 없다고 그 모든 전통을 등한시하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한다.

내가 크게 관심 있는 주제는 그런 거다. “신정론과 근대성”, “구원/종말과 사회적 행위”, “기독교의 지식사회학” 같은 것들. 이런 주제는 이미 여러 사회학자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고, 나는 사회학 이론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종교’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정론과 근대성: 신정론에 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했다. 신정론이란 전능하고도 정의로운 신과 그가 주관하는 세계의 비참과 고통의 역설을 설명하는 신학의 영역으로 신이 주관하는 세계에 정당하지 않은 고통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신정론에 관한 이해는 사회학의 핵심주제인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전통사회는 최종심급으로서 신과 종교적인 것으로 세계의 역설을 설명했다. 하지만 인간은 알 수 없는 고통을 이로써 더는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다. 천주교 최고의 축일인 만성절에 일어난, 예배를 드리던 무죄한 자들에게 들이닥친 죽음과 비참,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전능한 신의 침묵, 그리고 인간 성취의 하릴없음은 신의 의로움과 인간 존재의 근본을 묻기에 충분했다. 아도르노가 지적하듯, 리스본 대지진은 볼테르에게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이라는 병을 제거하기 충분했다. 나는 이런 역설을 설명하는 데 전통 종교가 실패하면서 이를 합리성이 대체했고, 이로 인해 근대성의 맹아가 움텄다고 생각한다.

구원/종말과 사회적 행위: 기독교 전통적 교리의 주제 중에 내게 중요한 건 구원론과 종말론이다. 구원과 종말이 종교인의 사회적 행위/실천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함께 우리가 목도한 바와 같이 특정 종교집단의 행위, 그러니까 이런 시국에 몇백 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집단감염이 이루어지고, 또 그걸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행위의 근원에는 그들 특유의 구원/종말에 관한 인식이 자리한다. 그들은 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해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 세상의 종말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 정상적인 삶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 언제 올지도 모르는 종말을 염두에 두고, 그에 긴박되어 그 불안 속에서 종교적 행위를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종말 교리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행위다.

기독교의 지식사회학: 지식사회학이란 지식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분야인데, “우리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경전 같은 말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의식이 자유로운 무엇이 아닌, 계급에 의해 제한되는 무엇으로 보았던 것인데, 이는 기독교의 영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중남미 아메리카의 근대사는 폭력의 역사이기도 한데, 이런 상황에서 움튼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만들어진 ‘해방신학’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설명할 신을 필요로 했고, ‘마르크스주의’를 접목해 신학을 만들어낸다. 기독교는 이렇게 탐구할 수도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종교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독교를 여전히 읽고 공부한다. 한편으로 나는 성경에 나온 예언자나 예수의 말을 윤리적으로 존중하는 편이고, 이를 통해 내 삶의 일부가 형성되었다는 것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공부하며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것이 있다. 한편으로 나는 기독교인 중에 신과 함께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이끌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을 여전히 존경하기도 한다. 이것이 기독교에 관한 내 솔직한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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