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공정한 경쟁>

한국 정치에 돌풍이 불었다. 한국 최고의 보수 정당에서 최연소 당 대표가 선출되었다. 대선 정국으로 열기는 감소했지만 이준석 씨의 당 대표 선출은 분명한 ‘사건’이다. 최근 관심 있는 주제와 연결되기도 하고, 주변의 권유도 있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대담집이라 내용이 많지는 않고 앉은 자리에서 2~3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강희진 작가와 이준석의 대담집으로 강희진 작가는 질문하면서 논의를 이끌고, 이준석은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젠더’, ‘청년정치’, ‘북한’, ‘경제’, ‘교육’, ‘보수의 미래’ 총 5개의 주제로 주제에 관한 이준석의 현실 분석과 비전으로 구성된다. 2년 전 책이라 지금 이준석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입장은 공유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준석은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 ‘자유주의적 보수’라고 말하는 바에 적합한 정도로 일관적인 편이라고 느낀다. 이준석은 책에서 박정희의 경제 정책을 “사회주의적 전체주의”라고 규정한다(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은 정확히는 발전국가 모델에 가깝다. 이준석이 알고하는 소린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이전 한국의 보수 정당은 자유주의라기보다는 보수주의라고 보는 것이 맞고, 한국의 경우에는 독재와 국가주의 정책에 있어 친화성을 보이면서 자유주의와는 일면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준석은 이에 일관성 있다. 하지만 이준석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밝히지만 한국 실정에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가 있나 싶다. 자유주의에 결이야 다양하지만 이준석은 징병제를 국가에 대한 강제의 입장에서 분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준석의 사회 인식에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이다. 우선 이준석은 사회의 진보보다 과학의 진보가 여성의 권익을 상승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왜 문제냐면, 이런 논리는 기술 발전 이전의 불평등은 물론이고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불평등을 정당화할 위험을 내포한다. 과학의 발전이 여성의 권익을 상승시킨 것은 맞지만,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세탁기 발명 이전의 가사노동과 피임 기구 발명 이전의 양육 및 출산의 불평등한 관계, 그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못한다(여담으로 세탁기를 포함한 가전제품이 여성 해방에 도움되지 못했다는 내용의 <세탁기의 배신>이라는 책이 있다). 이런 논리가 묵인하는 것은 과학의 진보 이전의 불평등은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다. 사회과학은 이런 부분을 지적할 수도 있고, 당연히사회사상은 물론이고 사회통계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과학적인 것, 혹은 공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뚜렷하게 구별되는 무엇이 아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 건 교양의 차이다.

더불어 이준석은 서울 목동에서의 중학생 시절을 회고하며 여기에서의 성적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한다. 이준석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존 롤스 이후 현대 자유주의라기보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내 개인적으로 이준석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을 예로 들면, 그는 자신이 노원구 상계동 출신의 서민 주거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음을 강조한다. 그 뒤 그는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1년씩 외국 생활을 했고, 이후 목동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하버드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벤처기업, 봉사단체 활동을 하다 박근혜에게 발탁되어 정계에 진출해 여기까지 이르게 됐다.

이준석은 상계동 서민 출신임을 강조했지만, 그의 아버지 이수월 씨는 유승민 의원의 경북고 – 서울대학교 동문이며, 친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버지의 해외 파견 시절 미국인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더불어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을 했고, 박근혜와 연결되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인맥과 연관된다는 논란도 존재한다. 이준석이 간과하는 것은 (혹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것은) 서울대 출신 아버지, 해외 경험으로 쌓을 수 있는 문화자본, 목동의 교육열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아버지의 인맥으로 연결된 정치권과의 사회(관계)자본 같은 유무형의 자본이다. 사회에는 이런 다양한 자본이 얽혀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준석은 이런 사회적 자원을 활용했음에도 이를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만 파악하며, 이를 사회에 확장한다면 문제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정도에서 줄일 생각이다. 이준석을 비판했지만, 가치관 차이의 수준이다. 그래도 이준석은 사회적 지원과 함께 정치에 입문하고 10년 동안 꾸준한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게 됐다. 종편의 탄생도 이준석이 받은 사회적 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되었든 이준석은 분명 저력을 보였다. 이준석에 의해 보수당이 재편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석은 자유주의에 일관성을 보이고 있고, 보수당에서 낼 수 있는 카드 중에 강력한 카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준석의 비전이 사회적 배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이준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이준석 자체가 부디 한국 정치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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