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황혼,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

1. 이 책,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는 저널리스트 앤 애플바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애플바움은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동료들과의 추억을 회고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과 지금은 친구는커녕 얼굴 보기도 민망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는 겁니다. 애플바움은 ‘왜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던 친구들이 이제 권위주의를 추종하게 되었을까’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 원인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제입니다.

2. 이 책은 독특하게 폴란드의 사례로 시작됩니다. 폴란드의 극우·보수정당인 ‘법과 정의당’(Prawo i Sprawiedliwość)이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 정당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정당으로 대표적으로 ‘성소수자 자유 구역’(Streffy wolne odiologyii LGBT) 같은 정책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자유 구역이란, 노키즈존 같이 성소수자가 없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이런 정당이 득세하게 된 원인을 고민해보는 겁니다.

3. 저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등으로 수면에 오른 포퓰리즘의 준동, 영미 정치의 위기를 다루는 일련의 서적이겠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펴보니 폴란드, 헝가리 등의 동유럽 사례나, 유럽의 사례가 나왔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이 책도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등의 문제를 영미와 함께 유럽 전체로 확장해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서구의 충격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크 릴라, 그리고 마이클 샌델 같은 굴지의 정치철학자도 이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4. 앤 애플바움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지만 애플바움은 이 문제를 공화주의, 자유주의의 정치철학적 논의와 같이 거창하고 거대한 문제로 다루지 않고, 권위주의에 빠지게 되는 심리적 기제를 다루며 보다 실제적이고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노지탤지어의 부활, 능력주의에 대한 실망, 음모론의 부상과 더불어 현대적인 담론 자체의 논쟁적이고 호전적인 성격도 현재 위기의 한 원인이다.”라고 분석합니다.

5. 그렇게 이 책은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와 같은 문제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경한 유럽에서의 포퓰리즘의 준동과 극우에 가까운 보주 정당의 부상을 보다 미시적이고 친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교양으로서 새로운 정보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외에는 ‘서구’에 큰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인데, 유럽 각국 정치 상황에 대한 여러 내용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6. 애플바움은 자유주의자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우파 자유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실 때 고려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에 내용이 많은 편인데, 감상과 맥락 위주로 책에 관해 적어봤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이 생소한 유럽 정치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각주를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해줬으면 독서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긴 했습니다. 물론 번역이 좋았고요, 기본적인 어휘를 설명하는 각주가 도움이 됐습니다.

7. 곁가지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에는 이런 권위주의 정당이 득세하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의 기본적인 상황 자체가 이미 그런 기반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분리주의(인종주의 기반), 국가주의, 성소수자 인권 옹호, 페미니즘 같은 주제는 한국 주류 정당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죠. 적극적이지도 않고요. 한국은 집권당 당 대표가 흑인 보고 얼굴이 연탄 같다고 농담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의 평균을 따지면 책에서 나오는 보수·극우 정당과 비슷할 겁니다. 다만 한국은 이민 국가도 아니고 국경도 폐쇄되어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않을 뿐입니다. 자유주의를 제대로만 지지해도 한국에서는 진보주의자가 될 겁니다.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소개하는 한국 정치인 중에 탈권위주의 입장에서 모병제를 국가에 의한 강제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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