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한국에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책이 나왔다. 이 책, <탄소 사회의 종말>은 우리가 마주하게 된 기후위기를 과학과 함께 사회적으로 조망하는 책이다. 이 책은 생태와 사회를 함께 보는 기획을 하는 책이다. 우리는 쉽게 기후변화를 ‘자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말해 순수하게 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 책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이 책의 주된 문제의식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책이 문제 삼는 것은 탄소 문제, 기후변화 같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탄소 사회’이다.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을 깊이 내면화한 고탄소 사회체제를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생산, 소비, 그리고 인간의 내밀한 의식까지 지배하는 달콤한 중독의 체제다.” 탄소 문제는 탄소 배출로 인해 기부가 변화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탄소와 함께 작동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작동시키는 의식까지 무언가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기후위기가 자연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성격의 위기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의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으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다룬다. 그 이후에는 저자가 인권사회학의 대가인 만큼, 저자는 기후위기를 인권 담론과 연결해 기후위기에 대응할 정당성을 확보한다. 대안을 고민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책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데, 기후위기에 관해 사람들이 왜 행동하지 않는가, 하는 그런 이유도 나와 있고, 그런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저자인 조효제 선생님이 강사인 포럼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한국의 경우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이것이 기후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에 관해 질문을 드리니 한국은 정답 찾는 교육에 몰두하기 때문에 정답은 알고 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는 대답을 해주셨다.

이 책은 정말 강력추천하는 책이다. 아마 작년에 읽었다면 망설임 없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을 책이기도 하다. 기후 문제를 다루는 첫 책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책은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자연적인 요인은 물론이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인 역시 탁월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문체나 내용 자체도 어렵지 않은 편이라서 꼭 한번씩 읽어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개인적으로 조효제 선생님을 알게 된 지 5년 정도 된 것 같다. 조효제 선생님은 정말 존경할 만한 학자시다. 굉장히 중요한 저작을 번역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저작 활동도 탁월하시고, 또 실천은 실천대로 이어가시는 좋은 학자의 전범이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평가와는 전혀 무관하게 선생님은 이미 그런 분이시고, 나는 선생님이 개척하신 분야를 공부하고 있지도 않지만,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가정폭력에 관하여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미국의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원제와 번역본 제목이 이 책을 읽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책의 원제는 “보이지 않는 멍No Visible Bruises”이고, 역서의 제목은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이다. 이 책은 어떤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은 가정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가정폭력이란 단어는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를 제대로 지칭할 수 없는 용어이기도 하다. 가정폭력이 문제화된 이후 여러 운동에서는 가정폭력을 ‘아내에 대한 폭력’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정확히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을 다루는 책이다.
 
아내에 대한 폭력의 역사는 유구하다. 전통사회에서 아내는 가장에게 언제든 폭력을 당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이런 역사는 그리스나 로마를 포함한 고대의 역사에서부터 현대의 역사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구타하면 바로 가해자가 구속되지만, 가정에서 아내를 구타하면 가해자는 구속되지도 처벌되지도 않던 시대가 존재했다. 가장이 아내를 구타하는 것은 가정의 일이자 가장의 권한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인식이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런 뿌리 깊은 습속은 사회에 잔존하고 있기에 아내에 대한 폭력은 한국의 경우, 법으로 제정된 것이 1990년대 후반이며, 그 이후에도 처벌의 수위는 동일한 수준의 다른 폭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이 책,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은 미국에서의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00년에서 2006년까지, 6년 동안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3,200명인데 반해, 가정 내 살인 사건으로는 1만 600명이 사망했다. 법제도 역시 기존의 가부장적 습속에서 제정되었기에,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다가 사망한 경우에는 ‘과실치사’가 되고, 가정폭력에 대항하여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면 ‘살인’이 적용된다. 이렇듯, 우리의 인식은 사회의 오래된 규범 속에 자리하고 사회의 법, 인식, 제도의 변화는 더디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은 가정폭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멍’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저자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는 문학적 저널리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폭력을 보이는 폭력으로 가시화하고, 미국 사회 가정폭력의 근간을 이루는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이를 파악함으로써, 보이지도 않는 멍을 가지고 죽어간 가정폭력의 희생자, 즉 “살릴 수 있었던”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여자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정폭력은 특히 여성 이슈 내부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 책을 통해 이런 문제가 기존보다 가시화되길 바랄 뿐이다.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할까? 이 질문에 굳이 답이 필요할까? 이 책은 저자 신명호 선생님의 박사 학위 논문을 출판한 책이다. 이 당연한 질문, 당연한 주제를 굳이 다룰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너무 당연하기에 이런 주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 기정사실인데, 그렇다면 왜 잘하는 걸까? 이걸 경험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학업성취의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부모의 교육 관여, 양육관행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학력 중산층 가정과 저학력 노동자층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고학력 중산층 가정의 부모는 자녀에게 끊임없이 학벌주의 가치관을 주입하고, 학업열의를 높이기 위해 일상적으로 의식화를 진행하고, 조기에 공부 습관을 들이고, 각종 생활을 통제하고 학업 전략을 수립해준다. 반면, 저학력 노동자층의 부모는 고학력 중산층 부모와는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열망을 보인다. 덧붙여 교육 관여에 있어서도 무관심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학위논문인 만큼 한편으로는 읽기에 딱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있었던 학업성적의 결정요인에 관한 설명을 정리해주고, 이 사이에서 교육 관여, 양육관행, 교육열망 등이 학업성취도의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유익했다. 책을 통해서 다양한 이론이 어떻게 교육 불평등을 설명해왔는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본론에 해당하는 2장, 3장에는 인터뷰가 상당히 많이 들어있다. A의 엄마는 특정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인생이 망한다고 말한다든지, 그런 태도에 불안을 느끼는 학생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냥 재밌게 책을 보고 싶다면, 약간은 학술적인 1장을 건너뛰고 2장부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저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는 게 상식일 만큼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이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제대로 알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회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 하나는 부모의 경험이 자녀에게 꽤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은 사회복지학 연구답게 정책적 제언도 잊지 않고 있지만, 책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북큐레이션 – 제주 4·3에 관한 책들

4월 3일은 제주에 역사의 비극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 사건은 해방 후 미군정부터 시작됐고, 이승만 정권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에 걸쳐 남로당 축출을 근거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살은 물론이고 살인, 강도, 강간 등 숱한 비극이 펼쳐집니다. 이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곤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큰 학살 사건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사건이 주변화되어 민주화 이후에도 한동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사건이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제주 4·3 사건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저는 남로당 축출을 근거로 한 국가폭력으로 이 사건을 보고 해석합니다. 제주 4·3에 관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1.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이 책은 제주 4·3 입문서로 제가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허영선 선생님은 제주 4·3사건을 꾸준히 다루어 오신 분입니다. 구어체로 된 이 책은 제주 4·3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서 접하시기에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먼저 책은 제주 4·3의 전체적인 맥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그것을 서술하고 있기에 제주 4·3 입문서로 가장 적합합니다.

2. 지슬, 오멸 원작, 김금숙 그림, 서해문집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가리킵니다. 이 지슬은 오멸 감독의 영화 원작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이 책은 4·3을 겪은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 4·3을 겪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 사건을 실화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고, 실제 우리는 ‘관광지’로 인식하는 장소가 학살의 장소였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마을 사람 120여 명이 정방폭포에서 학살당해 바다에 버려지기도 하죠. 오멸 감독이 말하듯, 우리에게 낭만으로 다가오는 제주도의 한편에는 그런 그늘이 존재했던 겁니다.

3. 4·3과 제주역사, 박찬식, 각

이 책은 제가 구비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렇게 도서관 책으로 사진을 올립니다. 사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2008년 판이고,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201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저도 고가라서 구비하지는 못했고, 살펴본 적만 있는데요 이 책은 제주 4·3에 관한 책 중 가장 학술적이고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제주 4·3을 잘 모르기에 제한된 경험 안에서 드리는 의견이란 걸 말씀드립니다. 제주 4·3에 관한 정치한 학술서를 보고 싶은 분께서는 이 책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4.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제주4·3연구소, 각

이 책은 제주4·3연구소에서 기록한 제주 4·3과 여성의 일상을 다룬 구술 채록집입니다. 구술사 연구로 구술을 통해 새로운 사회과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책은 아니고요, 단순히 그 시간을 겪었던 1920~30년대생 여성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이 4·3 이전과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도 그랬듯, 제주 4·3을 단순히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기에는 그 안에는 수많은 개인의 일상이 존재합니다. 국가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비극적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기에 좋습니다. 이 시리즈로 올해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은 신간 소개 때 다루겠습니다.

생존주의 근대성과 <사회학적 파상력>

 

지난 3월 사회학 고전 독서회 3번째 모임을 했다. 모임에서는 사회사상의 전통에 있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을 토대로 김홍중 선생님의 <사회학적 파상력>에 수록된 7장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라는 논문을 봤다. 김홍중 선생님은 한국 청년세대의 세대심(世代心)을 생존주의로 규정하는데, 생존주의로 수렴되는 청년세대의 특징은 이들만의 특징이 아닌 한국 근대의 심층에 자리 잡은 생존경쟁으로 귀결되는 사회진화론의 사회적 상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먼저 사회진화론을 알기 위해 허버트 스펜서를 다루게 됐다. 허버트 스펜서는 사회학사에서 오귀스트 꽁트와 함께 사회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스펜서는 경험과학적인 사회학을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사고로 후대에 영향을 미친다. 스펜서가 보기에 자연과 사회, 우주를 관통하는 제1원리는 다름 아닌 적자생존의 법칙이었다. 단순한 것이 복잡해지고, 열등한 것이 우등해지고, 그 과정에 적합하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혹은 도태되어야만 사회가 문명화되는 과정을 상상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가난한 자’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그에게 복지는 도태되어야 할 열등한 자를 살려내는, 즉 진화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스펜서의 사회사상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들불처럼 번졌다. 그의 책은 20세기 이전에만 약 37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특히 미국의 부유층에게 인기를 얻었고, 우리가 잘 아는 카네기도 스펜서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스펜서는 미국 사회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섬너(습속), 쿨리(거울자아)의 사회학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펜서를 재평가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가 우리가 인식하는 것 같은 악마적 사상가가 아니라는 것인데, 스펜서는 자신의 저작에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표현을 넣었고, 당시 서구에 만연했던 우생학/사회진화론/문명론 등과 조응하며 자유방임, 침략·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스펜서의 사상은 미국, 일본(사회진화론은 social darwinism의 일본 번역어다), 중국을 통해 한국에도 전해졌다. 특히 개화파 지식인, 식민지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에서 공부한 서재필, 윤치호, 일본에서 공부한 여러 지식인, 그리고 청(중국)을 통해 량치차오식 사회진화론이 한국에 유입된다. 당시 한 신문에 글을 올린 일본 유학생은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동물계부터 인간세계까지 남을 잡아먹지 못하면 도리어 잡아먹힌다.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은 만고의 정의다.”

제국주의 열강에 비해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모더니스트는 조선의 비참함 앞에 조선의 미개함과 근대를 이룩한 국가의 우등함을 비교하며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진화론이 독특한 것은 기득권 옹호의 논리임에도 이것이 당시에는 ‘과학’으로 포장되었기에 근대정신으로 지식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식민지배, 한국전쟁, 군부독재, 냉전체제, IMF 이후 신자유주의화라는 생존을 강제하는 역사 속에서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마음을 체화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은 한국 근대의 트라우마적 기원이 만들어낸 한국의 마음 심층에 자리한 원리가 된다.

그렇게 신자유주의화된 문제공간 속에서 청년세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존주의 세대’로 변모한다. 생존주의 청년세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애과정 전체에서 진행되는 경쟁상황에서 도태·낙오되지 않는 상태가 생존이다. 둘째, 이 생존은 경쟁에서 이겨 그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상황을 연장하는 것이다. 셋째, 경쟁상황에서 서바이벌을 위해 개인은 자신의 모든 잠재적 역량을 자본화하는 자기통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넷째, 생존은 특별한 성공이 아니라 평범함을 위한 분투다. 이런 진단과 함께 논문은 과연 생물학적 생존 정도로 삶의 의미가 축소된 현재 한국사회는 어떻게 성스러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질문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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